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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한편의 시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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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0.29. 11:15 화곡역

간밤에 다녀간 고요와 적막이 두렵다.
나는 네곁에 언제 있었냐는 듯이
이내 고개를 돌려
파리한 백짓장의 아름다움에
이기지 못하는 무게감으로 그리움도, 한숨도 토해낸다.

얼룩진 자욱은 그리 처절하게 타오르지도 못하고,
슬쩍 바랜 빛깔로 다가서서는
내가슴에 저미는 오욕으로 남는다.

펜 한자루에 기껏 3백원 하기를,
아깝지 않도록 휘갈겨 대지만,
따라오지 못하는,
아니, 따라가지 못하는
생의 값어치가 자꾸만 안타깝게 타오른다.

한줄 써내려가며
말도 안되고,
시도 안되고,
글도 안되고,
맹글어 놓은 기껏 괜찮은 어구들만
자꾸 귓가에 맴돌며 담배처럼 꼬신다.

너로 하여금
이세상에 태어나도록 부탁하지도 않는다.
너로 인하여
세상에 태어나는 불쌍한 하루살이
먹물도 아니다.

내가 아픈 것은,
언제가 될지 모를 이 끝간데 없는 가슴의 통증,
산고의 아픔을 동반하는
너를 낳느라 갈라지는
묵직한 두통.... 바로 그것이다.

속편한 자식.
내가 그리면 그리는 대로,
내가 저질르면 저질르는 대로 무책임하고,
이제는 기어코
내 머리 꼭대기에서
그 무례한 발로 짖밟기를 즐겨하는구나.
너를 이기고 나야 잠이 들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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