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시

인생은 한편의 시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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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3. 밤00:30 생활관에서

배부른 시인은 풍요를 품는다.
그의 도톰한 뺨에는
티없이 잔인하고 순진 무구한 아이와 같이
탓할 수 없는 싱그러운 욕심이 있다.

가난한 시인은 욕구를 낳는다.
그의 힘줄이 거센 두손에는
약동하는 노동자의 가슴처럼,
너무도 친숙한, 삶을 갈구하는 투쟁에 지친 염원이 있다.

시인이기를 원했던 날들.
시로써 자유로와지리라 믿었던 영혼의 사치.
시를 써 내려가는 나의 손은
자유롭지도, 풍요롭지도 않으며,
치열한 투쟁에 겨운 친숙함도 없다.

병든 시인의 수려한 차림새는,
이제 한껏 몇가지 찬을 올려놓은 밥상마냥
그럴듯한 식욕을 돋군다.

풍요와 사치에 젖은 돼지.
치열하게 꿈틀대는 벌레.
나는 어디쯤 있는가.

내가 원한 시인으로서의 삶은,
입을 열어 나오는 신음소리마다
하늘 가까이까지 울려 퍼지는 음악이며,
손에 펜을 드는 순간순간
성경에, 피라미드에, 꽃들의 가슴에 저미는 불멸의 언어이다.

나는 가난한 시인의 가슴을 갉아먹는 좀벌레처럼,
배부른 시인을 더룩더룩 살찌게 하는 한철 고등어처럼,
무지와 게으름의 포식자로 살고 싶지는 않다.

연필로 쓴 시도,
만년필로 쓴 시도,
내 가슴에 젖어주지 않으면
생명을 갈구하는 목소리로 울리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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