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시

인생은 한편의 시
저의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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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벽

아스라한 달빛 속에
새벽을 가르며
밤새 기다림에 지친 자동차
차가움 털어 잠을 깨우고
하루를 위한 시동을 건다

헤드라이트가 눈 부릅뜨고
아스팔트 도로 위 굳게 박힌
어둠을 벗겨내고
새벽운동 나서는 노부부 입에서는
따스한 사랑이 피어오른다

희망의 이른 새벽
상큼한 공기는 머리를 맑게하고
무사한 오늘을 위해서
두손모아 빌고 비는 정성속에
새벽의 껍질을 벗겨 나간다.

나의 하루


꽃은 지면서 향기를 남기고
가을은 떠나며 낙엽을 떨구며
낙엽은 도심을 달리며 그리움을 부른다

앙상한 나무는 허리에 새끼줄로
아픔을 감추고 마지막 잎새는
힘 없이 바람앞에 운명을 내어놓는다

또 다른 하루가 서산에 걸리고
지나온 시간은 말없이 아쉬움만 남긴채
어둠속에 나의 오늘도 저물어 간다








이별


나는 어제, 그것을 버렸다
되도록 조심스럽고 무뚝뚝하게 인사했다 안녕
잘가
라는 말은 생략했다
사실은 좀 슬펐으므로
슬퍼졌고 또다시 좀 더 소유하고 싶어졌으므로
몸에 피가 넝큼 빠진듯 허전해졌으므로
내 맘대로 신나고 즐거워버려서 미안
사실은 고맙기도 했으므로
어쨌든 가만히 있도록 노력했지만 어쨌든


나를 구역질나게 하지 말아달라는 애원
꾸역꾸역 밀려 아랫것들이
구데기처럼 구불렁구불렁하는 나는
비굴해 보였을까 잔인해 보였을까
누렇게 뜨악해서 안쓰러워 보였을까 때론 봐줄만 하지 않았을까


한참동안 양말에 구멍을 뚫고 당근처럼 붉은빛으로 물들어 걸었다
가여운 발가락과 발톱이
술마셔도 노래하지 않고
기뻐도 춤추지 않는 이유를
나는 알고 싶지 않았으므로
조용히 잠을 자두는 편을 삼아


길에서 내려서면서 바로 잊었다
붉은 발가락과 발톱을 싱그러운 수돗물에 담그고
텐트를 넓게 치고 드러누우면서 아, 잘가,
잊었던 인사도 마쳤다








영혼에게



내 생에, 내 세계에
세 들어 살며
생계를 다니러온
오만한 너,
영혼 한 쪼가리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만나서 손을 잡으면
미칠 듯 뛰는 것은
내 손바닥과
더운피가 솟구치는
심장이지
차갑고 깊은 곳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너, 영혼이아니야

마음만으로 사랑하고
목숨도 줄 수 있는 것이라고 하면...
나, 소외감에 괴로울 따름이지
말 못 하는 네 모습이
비쳐도 참아야 하는 거니?

너 떠나면 힘없이 스러져
홀로 설 수 없는 내게 생명인 것은
새로운 영혼이 아니라
세 들어 살던 단 하나의 너,
영혼이란 말이지

너 떠날 때까지
괴로움도 슬픔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내 운명이라 말했니





시인에게 새벽은 없다



가을 -
저 청한 하늘과 흰구름
가슴 뭉클하게
뜨겁게 되살아나는 나의 조국의 山河

옛 시인의 노래가 그치지 않은 관악엔
시대를 한탄하는 젊은 비명소리
메아리를 대신하고
젊은 피를 먹고 자란 치욕의 史는
도도한 한강수에
씻기워 흐르는데

나의 젊음이
오욕의 역사에 일조한 放觀者였음을
아리게 사무쳐 悔恨하려 할제
되살아 오는 그날의 함성에 격분하여
가신 님의 고난의 길을 쫏으려 할제

성계의 정도를 다 했음인가
아무 자랑할 바이 없는
위정자의 치세가
이 가을 버릇처럼 거리를 더럽히는 건
아직 피지 못한 젊은 시인의 피를
역사가 요구함인가.

한 밤내 울어도
진혼의 곡조로는 다 못할 初祭를
이제 서서히 준비하려함은
시대가 내린 하명을 깨달았음이니

시인에게 새벽은 없다
마음에 품은 비수에 날을 세워
큰 북 앞장서 나아갈 날을 준비하라 시인이여.





절름발이 삶

눈부신, 아침 꿈꾸고 있을 때

벼랑길을 걷고있는
날개 잃은 새,

자꾸만 벼랑쪽으로 기우는 몸
달래고 추스리며
한 다리로 밟아 오는
해 저문 길엔

한쪽의 다리가 되어
반쪽의 삶이라도
그렁그렁 짚어내 준
지팡이

눈물과 아픔으로
저도 한 발만큼 닳아
고무냄새 나던 모습은 추억은
박제해 품고
땟국물에 반짝이는
이 녘의 삶

골반뼈에 신경처럼 퍼져들어도
그 끝으론
흙의 따스함을 퍼 올릴 순 없고
모자라는 온기는
남은 다리를 주어도 좋을 마음으로
덥혀야 한다는 것을
새는 안다

아침 햇살의 꿈속에서
날개 잃은 새 한 마리
짤랑이는 동전 몇 잎
은총처럼 받아 물고
절름절름
제 둥지를 찾아가는 길

새끼 새의 부리에
벌레 한 마리 물려 줄 수 있다면
지팡이에 의지한 후들거리는
남은 삶도 부끄럽지 않을 텐데...

햇살이 부서지고 있다
지팡이에 찍힌 벼랑이
그림이 되어
펄럭인다.

































바람과 술, 나

하늘을 사랑하여
새 숨결 고르는 스스로의 생명들이
빛으로 나를 묻는다

내가 술을 마심으로
외로움을 달래려 하는 것은
풀잎바람에도 사시나무처럼 떠는 외로움이기 때문이다

대지를 사랑하여
새 생명 움트는 스스로의 씨앗들이
새싹으로 나를 묻는다

내가 술을 마심으로
슬픔을 달래려 하는 것은
해설피바람에도 하롱하롱 떨어지기 꽃잎이기 때문이다

바다를 사랑하여
새 눈물 일구는 스스로의 소금들이
소리로 소리로 나를 묻는다

내가 술을 마심으로
아픔을 달래려 하는 것은
새벽별바람에도 풀잎끝 새초롬히 새우잠자는 이슬이기 때문이다

너를 사랑하여
스스로의 생명없는 모든것들이
내 안의 기쁨이 되어 나를 묻는다

내가 술을 이김으로
그리움을 달래려 하는 것은
물무늬바람에도 소금쟁이 밀려나는 파동으로
너와 나 있음을 비로소 일깨워 짐이다






내 유년의 뜰 - 밤나무숲

내 유년의 뜰은 밤나무 숲이다.
아버지는 죽음을 예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뒷산 비탈에 30그루의 밤나무를 심어놓았다.
대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 그 밤나무 숲에 올라가면
나를 감싸고도는 눅눅한 습기가 참으로 편안했다.
오랜 세월 누적된 이끼들은 포근하게 나를 안아주곤 하였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툭, 툭, 밤송이들이 벌어지는 소리며,
혹은 실바람에 밤톨들이 껍질을 벗어나 떨어져 내리는 소리들이
자장가처럼 아련했다.
가을이 되면,
새벽마다 어김없이 밤을 주으러
풀숲을 헤치고 산을 오르느라 바지가 흠뻑 젖곤 했다.

밤 꽃을 느정이라고도 하는데 이름이 얼마나 이쁜지...
느정이, 느정이, 밤 느정이...............
고등학교 때까지 밤나무 숲 출입은 나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런데,
정말,
밤나무에는 아버지의 정령이 맴돌고 있었던 것일까?
그 곳을 떠나온 이후,
밤나무들은 죽어가기 시작했다.
해년마다 할아버지는
몇 그루씩의 밤나무들을 베어내어야 했다.
한번 썩어들어가기 시작한 밤나무들은 강한 전염성(?)으로
차츰 그 영역을 넓혀갔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내 유년의 뜨락에는 두어 그루의 밤나무가
간신히 버티고 있다.
주먹만했던 밤톨들도 해년마다 잘아져,
이제는 산짐승들에게마저 외면당한채 방치되어 해를 거듭한다.
그러나
이제 남은 두어그루의 밤나무들을
할아버지는 더이상 베어내지 않을 것이다.
그런대로 생이 다 하도록 놓아두기로 했기때문이다.
약이라도 한번 써 봤으면 좋으련만...
하시며 안타까워 하시는 할아버지는
이미 내 마음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밤나무숲을 아직 추억으로 넘기고 싶지는 않다.

내 유년의 뜰이자, 장년의 뜰이고, 노년의 뜰로 영원히
남아주길 바라는 것이 지나친 욕심이 되지 않았으면
그랬으면
참 좋겠다.




































해바라기의 사랑

해바라기는 그게 운명이었다.
그저 해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바라기의 사랑은 운명이었다.
그건 그들의 거부할 수 없는 정해진 운명이었기에..
그들은 거기에 복종했다
해바라기의 소원은.
해를 한번만 만져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해는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높이 있었기에..
해바라기는 그저 안타까웠다.
계속해서 해바라기는 자기의 키를 키워나갔고
바람이 불면 꺾일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해바라기에는 자기 자신을 지키는 일 보다는
해에게 좀 더 가까이 있고자 하는 바램이 더 간절했으니까.
그렇게 자꾸만 손 내미는 해바라기를
해는 그저 물끄러니 쳐다만 보았다.
해바라기는 그런 해가 원망스러웠지만..
너무나 사랑하기에 계속해서 그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고
그렇게 살아오던 해바라기도
기다림에 지쳐서 너무 긴 기다림에 지쳐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러고는 그 길었던 기다림을 마감하면서
해바라기는 해바라기의 생애를 마감하고.
그렇지만 해바라기는
죽으면서까지 해를 포기하지 않는다.
해를 사랑해서 그 기다림으로 인해
까맣게 타버린 동그란 마음들을 남기고 죽었다.
그 마음들의 조각들은
그들의 운명에 따라서 또 다시 해를 향한 기다림의
사랑을 할 것이다.
그게 해바라기의 운명이다.









길 위에서의 생각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도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위에 쓰러진다.























슬픔에게 안부를 묻다

너였구나
나무 뒤에 숨어 있던 것이
인기척에 부스럭거려서 여우처럼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
슬픔, 너였구나
나는 이 길을 조용히 지나가려 했었다
날이 저물기 전에
서둘러 이 겨울숲을 떠나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를 깨우고 말았구나
내가 탄 말도 놀라서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숲 사이 작은 강물도 울음을 죽이고
잎들은 낮은 곳으로 모인다
여기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또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한때 이곳에 울려퍼지던 메아리의 주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무들 사이를 오가는 흰새의 날개들 같던
그 눈부심은
박수치면 날아오르던 그 세월들은
너였구나
이 길 처음부터 나를 따라오던 것이
서리 묻은 나뭇가지를 흔들어 까마귀처럼 놀라게 하는 것이
너였구나
나는 그냥 지나가려 했었다
서둘러 말을 타고 이 겨울숲과 작별하려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에게 들키고 말았구나
슬픔, 너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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