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시

인생은 한편의 시
아버지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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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오동나무 아래
늙은 아버지가 세월을 꼬고 있습니다.
잎지는 나무처럼 당신도 팔순의 문턱을
지는 낙엽처럼 서러워하십니다.

열여덟 서산 장날,
우연히 귀 뚫게 한 시조(時調) 한 대목에 이끌려
남은 생 보호처자(保護妻子)뒤로 하고
젊은 피 그 곳에 토해 내던 무심한 내 아버지.
사시사철 푸성귀만 널널한 오지 산골에
제자 되겠다 찾아 들던 도시 손님 찬거리 걱정과
당신께서 놓아 버린 농사일 소처럼 해 대는
눈물겹게 고된 어머니 나 몰라라
한번 외출은 열흘이 되고
반신불수(半身不隨) 할머니 아들 기다리다 지쳐가고
담아와 보이는 사진은 고운 한복의 여인들 가운데
청일점으로 꽃봉같던 아버지를
말못하고 삭히시던 어머니와 자식들의 한(限).

그렇게 모질게 억지처럼 세월 가고
내 머리가 커질 즈음
원망을 이해로 돌려보는 내 앞에
그 길을 가야만 했던 당신의 번뇌가 보이고
식구들의 한 보다 자책에 더 깊이 패인
당신의 상처가 보여 집니다.

이해의 마음으로 다시 보는 아버지의 삶.
종종 국악 한마당에서 제자의 집고를 하고
해를 걸러 대통령상 받은 제자 찾아와 절 올리면
그게 어디 내 덕이냐, 모두 자네 복인 것을..
허허 웃으시던 그 때는 높은 산이었습니다.

여물 끓일 삭정이 하나 꺾어 오지 않으면서
우람한 장고감 오동나무 비싼 값에 사들여
밤도 좋고 낮도 좋아라 공들여 작품으로 만들면
점잖게 무릎장단 치다가도
서로 갖겠다고 핏대 세우던 제자들도
바로 얼마전 아버지 앞의 그림이었습니다.

이제 힘이 달려 다리품 못 팔겠다 먼 곳의 부름 거절하고
할 줄 아는 이 그 가락 그 장단이니
소일 삼아 커다란 상 펼쳐 놓고
우리 세대 생소한 고전 악보 전지(全紙)에 그려 넣으면
어느 새 쏜살같이 거둬가는 제자들이
그래도 힘이고 영광인 내 늙은 아버지.

이제 오동나무 아름 안아 보며
두어 개 장고를 뽑아 내고 싶어도
끌질이 엄두가 안나 세월을 탓하지만
지난 세월 내 할일 다 했노라 위안하며
당신보다 갑절은 늙어 뵈는 마누라 다리 주물러 주는
인생의 막바지..회한(悔恨)의 아버지여 !!

당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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