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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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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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 초


잡초는 자신이 '잡초'라는 것을 인식한 적이 있을까?

길가 아무데서나 뿌리를 내리고 무식하게 번져 주위의 영토를 점령하는 그런 천박한 자신을 사람들이 '잡초'라는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
볼품없는 것이라고 눈길 한 번 받지 못하고 운이 나쁘면 뿌리째 뽑혀 뜨거운 태양 아래서 신음하다가 삐쩍 말라 죽어 버리고 마는 자기 신세를 알기는 아는 걸까?
씨가 다르고 뿌리도 다르고 잎 모양도 다르고 물론 이름도 제각기 다른데도 그저 멋대가리 없는 '잡초'로 싸잡아 불리우는 걸 아는 건지?
왜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근사한 이름의 '장미'로 태어나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비싸게 여겨지는 고귀한 운명을 받지 못했나 원망도 없었을까?
나무그늘에 가려 햇빛을 못 보아도 비가 내리지 않아 목이 타 들어가도 누구 하나 돌보아주는 이 없고 걱정하는 이도 없는 그런 자신이 바로 잡초라는 것을 모르는 걸까?

만약 잡초가 자신이 '잡초'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이미 그건 잡초가 아니다. 자신의 초라함에 슬퍼했겠지...그리고 정원의 '장미'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자신의 운명을 비관하겠지. 그리고는 누가 일부러 뽑지 않아도 시들 시들 사라지겠지. 그래서 여러 사람의 수고를 덜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잡초가 '잡초'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것도 이미 잡초는 아니다. 우선 생존을 위해 더 많은 지역을 점령하고 떡 버티고 선 후에 누가 상처를 내고 결국에는 뿌리째 뽑혀나가도 한 틈에라도 뿌리를 박고 견뎌내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이름을 찾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다. 묵묵히 정원의 웃음소리를 참아가며 그저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꽃을 피워내는 것이다. 보잘 것 없거나 꽃이라고 여겨지지 않더라도 그것은 그만의 이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 그를 잡초라고 부르더라도 그는 잡초가 아니다. 그리고 그는 다음 해 장미가 핀 정원을 점령해 버리는 것이다. 누가 물을 주지 않아도 햇빛을 염려해 주지 않아도 그는 어느 자리든 찾아가 존재하는 것이다.
잡초는 이제 없다. 그를 '잡초'라고 부르도록 자신을 버려두지 않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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