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차 한잔 마시다 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해 보세요
##유년의 기억##(고물상아저씨와 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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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가위소리가 들리면, 나는 어김없이 그동안 모아 두었던 헌신발이며
아빠의 새농민 헌책들을 모은 대아를 들고 마을 회관앞으로 뛰쳐나가곤 했다.
여간해서 용돈두 군것질 거리도 생기질 않았던 어린 시절에
고물상아저씨와 나와의 은밀한 물물 교환은 그렇게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집은 윗집과 아랫집이 서로의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윗집은 낡은 초가집으로 나와 두언니는 할머니와 함께 그곳에서 지냈고
두오빠와 막내동생은 부모님과 함께 아랫집에서 지냈다.
언니들은 양철 스레트가 올려진 아랫집에서 부모님과 지내지 못하는걸 무척이나
아쉬어 했지만. 나는 그 낡은 윗집 초가가 너무도 좋았다.
그곳엔 내가 원하는 고물들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고물상아저씨가 오시는날..
마을 회관앞으로 달려 나가는 아이들의 손엔 뻥튀기 과자가 아닌
라면이 들려 있었다. 지금 라면은 돈만있으면 손쉽게 사다 끓여 먹을수 있는 것이지만
작은 섬마을의 구멍가게에 라면은 그리 흔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놀라고 기뻐할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 내가 모아둔 고물들을 바꾸면 라면이 몇개가 될까...
나는 부푼 기대로 짧은 다리를 널찍이 벌려 가며 빠른 걸음으로 비탈길을 내려
고물상 아저씨에게 달려갔다.
내머리엔 빨간대아위로 올려진 고물들이 덜커덩 소리를 내며...

쌕쌕거리는 숨을 삼키며, 아저씨에게 모아온 고물을 내밀었다..

-"아저씨 여기요"

내심 설레는 맘으로 기다리고 있는
내게 아저씨는 달랑 삼양라면 2개를 내미셨다.
너무도 실망스러워 쳐다만 보고 있는내게
고개짓으로 이것도 어딘데라는 표정으로 어서 받아 가길 채촉하는 눈빛이셨다.

-"아저씨 이게 다다요?"

내가 금새 눈물을 터트릴것 같은 모습으로 말을 걷냈을때
고물상 아저씨는 내얼굴을 빤이 쳐다보시며..

-"니가 가지고 온것은 별로 비싼고물이 아니어서 아무리 많이 가져와도
양은 냄비나 고무다라나 그런거 한두개 값도 못쳐준당께"
하시는 것이었다.

-"양은 냄비요? 그건 라면 몇개 주시는데요?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있으면 한번 가지고 와보랑께...
솥단지 같은거믄 더쳐주지 암.. 열봉두 넘게 가져갈껄?

나는 값자기 뒷집 아궁이에 시커먼 그을음과 함께 걸어진 솥단지들이 떠올라
높은 언덕길을 뛰어 올라 금새 뒷집 부엌앞에 도착했다.
그때마침 집은 비어있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은 내손에 쥐어진
라면에 눈독을 들였는지 어느새 나와 공범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열살박이 소녀의 힘으로는 도저히 들기가 힘든 그 솥단지를 낑낑거리며
마당앞으로 내어 왔다.
"우리집엔 솥단지가 많으니까 이거 하나 없어도 밥해먹는데 불편하진 않을꺼야"
나는 혼잣말로 나를 안심시키며.. 그 부엌안을 다시한번 둘러봤다.
다른것이 또 없나하고..그때 작은 멧돌하나가 눈에 띄었다.

-"저것도 쳐줄까?

오랫동안 쓰지 않아서 먼지가 끼어있어 저거 하나쯤 눈에 뵈지 않아도
누구하나 아는 사람이 없으리라는 생각에 그것도 마당에 내놓고
나는 고물상아저씨에게 뛰어나갔다.

-"아저씨, 우리집에 고물이 많은데 무거워서 가져올수가 없어요"

-"그래? 어디 가보자 내가 들고 오면 되니까...

아저씨는 순순히 나를 따라 우리집으로 올라오셨다.
그리곤 마당앞에 내놓은 검은 솥단지와 작은 멧돌을 보시고는
나를 한번 쳐다보셨다.

-"너희 부모님 안계시냐?

-"예"

-"저와 제동생밖에 없는데요? 이거 안쓰는 거라 괜챦아요..

-"우리집에 솥두 많구요, 큰 절구통도 있으니까..
이런 작은 멧돌은 필요가 없어 요..아저씨 얼른 가져가시고 라면 주세요.."

아저씨는 흐믓하면서도 왠지 은밀한 웃음을 지시며 리어카위에 고물들을 실으셨다.

그리고는 내게 열봉지의 라면과 뻥튀기과자 네봉지를 쥐어 주시며 고무과자 몇개도
덤으로 언져 주시고는 다시 고물장수의 특이한 목소리로 "고물" "고물"을 외치며
마을 밖을 벗어 나셨다...
식구들 모두는 내가 기특하게도 동네에서 고물을 주어다가 바꿔온줄로만 알고는
모두 나를 기특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시며 흐믓해 하셨다.

이렇게 우리 형제는 그날 내가 솥단지와 멧돌로 바꿔온 라면을 가지고 오랫만에
한상에 둘러앉아 같이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러나 검은 아궁이위에 비어있는 솥단지 자국은 아궁이에 불을 지피로 들어가신
할머니의 눈에 보이지 않을리가 없듯이, 그날따라 엄마 까지 콩국을 끓이신다고
멧돌을 찾으시는 게 아닌가...

그날 나는 그 아궁이 위에 솥단지가 되어서
검은 그을음 가득한 아궁이 위에서 손을 들고 장장 2시간이나 벌을 서야만 했다.

지금은 들을수 조차 없는 고물상아저씨의 묵직한 가위소리도..
그을음 가득한 아궁이위에 검은 솥단지도..
두손을 맞잡고 돌려대던 멧돌도...
찾아볼수가 없지만...
가끔 라면을 끓여 먹을때면..
고물팔아 끓여 먹던 그 라면 맛이 왜그리 맛있었을까..
피식 웃음이 나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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