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차 한잔 마시다 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해 보세요
가을 하늘에 비치는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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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92..학교에 야영을 가게 되었다. 사랑이 녹아 상큼한 향취가 풍기는 야영 생활에서 바라보게 된 가을 하늘은 슬픈지, 세상을 불투명하게 보고 싶은지 아무 것도 없는 허공 사이에 자꾸만 길고 굵은 눈물을 흘려댄다.
그렇게 야영을 끝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간 집. 밖이 어두워서인지 집도 어두웠다. 불을 켜니 현관 한편에서 종이 한 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왠지 조그맣게 느껴지는 종이에는 몇자의 글씨가 나를 맞았다.
"작은 할아버님께서 돌아가셨으니 순창에서 한 삼일 있다가 올꺼다."
죽음. 할아버지의 죽음이었다. 어느 영화의 한편에서만 나올 것 같았던 단어인 죽음. 죽음이란 두 글자가 내게 다가온 것이었다. 그것도 나의 작은 할아버지...명절때마다 만나면 언제나 날 부둥켜 안아 주던...(할아버지께선 내가 어릴 적에 돌아가셨다.) 그런 분이 말이다. 영화나 소설에서 보면 이럴땐 나 같은 상황이 되면 슬픈 얼굴을 지며, 땅을 치며 울던데... 내게는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커서인지 세상 냄새에 코의 감수성이 다 말라버렸는지, 아니면 세상에 시달려서인지. 그래. 아마 나는 그랬을 것이다.
매일 매일 학교에 다니며 수학 공식 몇 개와 영어 단어 몇 개에, 웃고 싶지 않는데도, 울고 싶은데도 언제나 웃는, 아니 웃어야만하는 도시 한복판 빌딩 입구에 자리한 그 마네킹처럼 난 그렇게 살았다. 그래. 그랬었던 것이었다.
나는 한참을 잤다. 꿈속으로, 꿈속으로...저녁정도가 되니 전화가 왔다. 부시시한 음성으로 받아보니 어머니였다. 한참을 서성이다 그 때 깨달았다. 아! 죽음. 하지만 그것도 잠깐... 나는 집에 혼자 있을 수 있다는해방감에 그 누구에게도 구속당하지 않는다는 자유로움에 휘말리게 되었다. 그 누구의 죽음은 기억의 저편 넘어로 내던진 채 말이다.
한참을 놀았다. 오락을 하고, 노래도 부르고, TV도 보면서... 하늘이 검게 물들어가면서 그 공간 하나, 하나에 별들이 하나, 둘씩 박혔고, 난 혼자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현관 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타 옥상에 올라갔다. 그리고 한참을 바라본다.
어릴적 보았던 할아버지의 웃음, 티없이 맑았던-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내 모습, 나를 위해 항상 뛰어다니시는 아니 뛰어야만 하셨던 나의 아버지, 어머니. 맑은 공기 아래 뛰놀던 아이들의 웃음이 별 하나 하나에 박혀 바람에 사무친다.
나는 슬퍼하는 것 같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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