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차 한잔 마시다 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해 보세요
얼음썰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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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께서 딱 한번 만들어 주신 적이 있다.

모든 동네 아이들이 부러워하는 튼튼하고 잘 나가는 신나는 썰매를 7
살때부터 몇년간 보관하면서 잘 썼는데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지도 아무
도 모른다. 그 때 우리집은 정말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누런 암소가 있는 마굿간 기둥에 커다란 살구나무가 있었다.
봄이 되면 분홍빛 향내의 살구꽃은 많은 동네처자들을 미치게 만들었
다. 뭔지도 모를 아련한 기다림, 도회에 대한 막연한 기대였을까? 우리
같은 시골뜨기와는 다른 백마탄 왕자에 대한 기다림이었을까? 꽃같은 우
리 누나와 동네 누나들은 화사한 얼굴들로 재잘거렸고, 나는 괜히 누나
방을 기웃거렸다.
하지가 가까워 지면 익기 시작하는 살구내음, 여름 소나기에 지천으로
떨어지면 바지에 쓱쓱 문지르고 먹었으며, 친척들과 모내기
를 끝내면 살구나무밑으로 달려 갔다.
대구에 사는 경란이라는 소녀가 있었는데 우리 옆집-할아버지 할머니집 여름, 겨울방학이면 어김
없이 찾아 왔었다. 중2땐가, 고2땐가 여동생을 통해 편지를 전해 받았는데 살
구나무 밑에서 만나자고 했다. 낯이 벌개지면서도 달밤에 그 나무로 갔었다. 결혼
을 하면 저를 닮은 예쁜 얼굴에다 나를 닮은 머리좋은 자식을 얻는다나
어쩐다나, 도회의 꿈결같고, 천사같은 여학생은 촌뜨기 깜장고무신차림
의 내게 그런 달콤한 이야기를 한 것 같다.
그런 미치도록 곱고, 향기로운 살구나무밑에서 겨울 준비를 했다. 시겟토(얼음썰매) 만들기도 겨울나기의 일부.
양동이 밑에 붙어 있는 동테를 빼거나 굴뚝끝에 모자처럼 붙어있는 양
철 테를 훔쳐서 두들기고 갈면 철공소에서 판매하는 예쁜 날보다 훨씬 좋
다. 내손에 없어진 수많은 양동이와 굴뚝테로 엄마는 겨울내내 잔소리
를 하고 옆집 아재는 늘 우리들을 의심한다.

지난 겨울 아이들의 시겟토와 창을 만들면서 손을 베었다.
문득 어린날, 매일 매일이 축제같았던 겨울방학이 생각난다.

막내동생의 그네가 매어져 있던 그 살구나무가 언제 어떻게 베어 졌는
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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