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차 한잔 마시다 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해 보세요
풍경 속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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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속 그리움-

오빠를 처음 만난 곳은 학교 매점이었다. 나는 여대를 졸업하고 시험 준비를 위해 학교에
서 매일 공부를 하곤 했다. 키도 작고 얼굴에는 여드름이 곰보 빵 마냥 나 있었다. 매점을
들릴 때마다 '왜 하필이면 저렇게 못 생긴 사람이 아르바이트를 한담, 기왕이면 멋있게 생긴
사람 쓰면 안 돼나...' 라는 생각을 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이었다. 우산을 쓰긴 했지
만 신발도 바지도 모두 젖어 비 맞은 생쥐 꼴이 되어 버렸다. 열람실로 막 올라가려는데
"저기요, 매점 잠깐만 봐줘요?" 오빠가 내게 던진 첫마디었다. 그 이후로 매점을 들릴 때면
한 두 마디씩 말을 걸었다. 한 일주일쯤 지났을까... 오빠가 열람실로 올라와서는 화장실에
가는 나를 불렀다. "저기요, 시간 좀 있어요? 잠깐 얘기하면 안 돼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게 관심을 보인 것 같긴 했지만 짐작했던 일이 사실이 되어 버리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오빠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만나면 만날수록 내게 과분한 사람 같아 보내
줘야 한다는 생각들로 눈물을 흘리며 밤을 지샌 적도 많았다. 오빠와의 첫 여행은 각본 없
는 드라마였다. 오빠 동아리 사람들과 차를 빌려 서해 바다로 늦은 12시에 출발했다. 부푼
기대와 설렘을 갖고 출발한 여행이었다. 새벽 세시가 넘어 만리포 해수욕장에 도착한 우리
는 사진도 찍고 오빠 친구들은 바닷물 속에 뛰어들고 대낮인양 착각할 정도로 우리 앞에 어
둠은 젊은 혈기를 잠재울 수 없었다. 그 날 렌트한 차는 백사장으로, 바닷물로 온통 목욕을
하는 상상도 못한 일이 생겼다. 누가 차를 백사장으로 가져 왔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차를 원상 복귀할 수 있을까가 중요했던 오빠와 오빠의 친구들... 내게는 우정
이라는 희망의 무지개가 가슴속에 되새김질되었다. 오빠와의 만남은 재미있었던 일도 많았
다. 둘이 손잡고 걷는 나의 모습이 그렇게 밝았던 적이 없었다고 친구는 말했다. 서로 많이
닮았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공부를 하며 힘들면 괜히 짜증만 냈던 일, 깨워 달라 해 놓고
전화를 안 받았던 일, 크리스마스 이브 날 선물했던 분홍색 목도리를 화장실에 버렸던 일들
이 이제는 내게 아련한 기억들이 되어 버렸다. 오빠와 거닐던 등성이를 넘어선 벚꽃 길, 등
나무 벤치, 자주 가던 학교 앞 식당, 지하철 호선 타고 집으로 함께 오던 일곱 번째 칸 왼
쪽 끝자리, 가로등, 깜박이는 신호등 앞에 이제는 홀로 서 있어야 한다. 이제는 어디에서도
오빠를 볼 수가 없다. 함께 했던 공간을 이제는 혼자 거닐어야 하는 사실보다 힘든 건 그는
지금 이 곳에 없으니까 나와 함께 했던 공간을 잊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에
대한 만남이 뒤늦게 후회되는 건 처음으로 좋아했던 사람을 보내는 것과 같은 이유로 떠나
보낸 나의 죄책감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떠나 보낸 이후에 그를 만날 때 주
지 못했던 더 커 버린 사랑을, 마음속에 부여잡아도 보고 버리려고도 해 보지만 시간이 지
날수록 선명해져만 간다. 그와 함께 한 공간 속에 주인공은 그가 아니다. 머리 속 가득한 풍
경 사진들이 계절마다 색칠되고, 나는 그 밖에 관객이 되어 그를 관람하고 아무런 관람료도
지불하지 않는다. 그는 조금씩 바래져 가지만 풍경들만은 색색이 그리움이 되어 가슴에 별
처럼 반짝인다. 그가 나처럼 풍경 밖 관객이 되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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