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차 한잔 마시다 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해 보세요
아내없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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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아내없는 하루


너무도 오랜만에 혼자있는 시간을 즐기기 위하여 나름대로 계획을 짜내 본다.
아내는 화사에 출근 준비로 바쁘다며 아이 좀 부탁한다며 바삐 현관문 밖으로 숨어
버리니 아이가 엄마 어디 가느냐고 샛 님처럼 해맑은 웃음으로 엄마를 부르며 물어온다 .
그리고 서둘러 아이를 씻기고 얼마 전 시장에 가서 사 온 새 옷으로 입혀 본다.

혼자 낄낄 거리며 누구 아들이 길래 이리 예쁠까 . 중얼거리듯 거실의 방바닥에 조르르
흘려 내며 아이의 노란 유치원 가방 안으로 도시락과 우유 .그리고 여벌로 옷 한 벌을 넣어
아이를 대리고 집 앞 유치원버스가 오는 곳으로 나간다.

그리고 잠시 금호여자중학교 간판 밑으로 노란 버스가 멈추어 선다.
아이에게 입맞춤과 동시에 아쉬운 이별을 하고 발길을 돌아선다.
순간 허전함이 꾸역꾸역 밀려온다.이제 무얼 한담 . 또다시 투덜투덜 거리며
집으로 돌아와 한 참을 머 마려운 똥 강아지처럼 끙끙 거린다.

그렇게 방안의 공기들과 멍청스럽게 술래잡기하듯이 옷장 속의 옷가지들을 괜 실이 만지 작
거 려 본다.
하지만 그 역시 그리 오래가지 않아 지루함으로 짜증스런 실증을 안겨 준다.
무엇을 해야 할까. 어제 밤에 생각해놓았던 기억들은 까마귀 고기 먹은 것처럼 그 어떤 것 하나
떠오르지 않는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욕실로 들어가 옷을 벗어 본다.
그리고 거울 앞에 벌거벗은 몸을 이리저리 비추어 본다.
순간 삼류잡지에 나오는 누두 모델이 된 느낌이다.
그리고 순간 시선이 거울의 밑으로 눈길을 내려본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시무룩하게 숨죽어 있는 그 녀석을 바라본다 .
누가 그랬던가 여자는 거울 앞에 자신의 벌거벗은 몸을 통하여 새로운 활력을 찿는 다고
하지만 거울 속에 보이는 나는 얼마나 형편없는 한 사내로 비추어지고 있는지

순간 거울 밑으로 보이는 그 녀석을 흔들어 깨워 본다.
어린 나무들이 오랜 시간의 영양분을 먹고 온갖 푸른 생명으로 자라나 우거진 숲을
이루듯이 그 녀석이 온 몸에 뜨거운 혈기를 불어 넣어 주고있다.
그리고 잊어 버렸던 어젯밤의 기억들이 어미 새가 애기 새 들에게 모이를 물어다 주듯이
기억을 저장해두었다가 필요 할 때 마다 방뇨를 해주는 신경세포의 혈관 속에 초고속 속도로 가져다 주고있다.

그리고 벌거벗은 몸으로 아내가 서있던 자리에 서 본다.
비록 아내의 얼굴을 마주할 수 는 없지만 아내의 향기는 나를 마주하고있다.
순간 그래 맞아 아내가 집에 없을 때 아내가 되어 보는 거야. 순간 물오른 버들잎사귀
위로 펄럭펄럭 은은한 춤 시위를 벌이는 나비의 꽃 비듬같이 웃음이 흘러나와 입가에 야릇한 자태로 춤 시위를 벌리고 있다.

싱크대위에 설거지통속 그것들을 순식간에 접수작업을 했다.
미끈하게 손등을 타고 흐르는 세제의 거품들이 어쩜 맑고 투명한지 한 참을 어릴 적
철없던 시절로 돌아가 본다.
마땅한 놀 이감이 없었던 그 시절 어머니 몰래 양잿물 삭혀 만든 시커먼 빨랫비누를 들고 나와 아이들과 도랑 가에 풀줄기를 빨대 삼아 거품놀이를 하던 그 시절 그렇게 아이들과 정신없이 비누거품을 불어대다 빨랫비누 방울이 목안으로 삼켜지기라도 하면은 시뻘건 토끼 눈 깔 비벼 대며 온갖 생 눈물을 빼던 그 시절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밀려져 오른다.

방안 여기저기 벗겨져 있는 옷가지들을 끌어 모아 세탁기안으로 넣고 세탁기를 돌려본다.
웅 웅 소리가 마치 어린 시절 농사의 짐받이들을 실어 나르던 도락구 엔진소리처럼 들려 온다
어린 그 시절에는 대부분 농사기구들이 재래식들이였다.
도리케 구르마 가래 등등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않으면 않되 던 그 시절에 내가 살던 동네에
도락구가 등장을 한 것은 아마도 동네 웃 골 태성이 할아버지 내 둘째 아들이 소 두 마리를 몰래
팔아서 도회지로 나 간지 열 해가 다 되어 갈 무렵이였다.
도락구 하고 하나가 더 있었다.

볏 타작 할 때 쓰는 탈곡기였는데 . 예전 같으면 논 바닥에서 벼들을 깔아 놓고 동네 장정들이
원형으로 둘러서서 신나는 음주가 부르며 도리케질로 벼를 털어 내야 했지만 태성이 할아버지 둘째 아들덕에 해마다 힘들게 볏 타작을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말이다.
또한 볏 가마니들을 예전에는 일일이 지 개에 다가 져서 날라야 했지만 도락구가 생기고 부 터는 그 또한 한 번에 실어 나를 수 있었으니 상상할 수 없는 발전이였다.

신발장에 케케한 먼지를 뒤집어 쓰고있는 운동화를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칫 솔대에 못쓰는 칫솔을 들고는 운동화의 구석구석을 문질러 댄다.
한참을 정신없이 문질러 대다 보니 어께가 저려 온다 .
문득 아내가 떠오른다 .

남자인 나도 이렇게 힘든데 . 이 사람은 어떻게 궂은 소리없이 다했을까.
어디 외출을 할 때 마다 운동화를 꺼내 들고는 이게 빨은 거냐고 궁 시렁 아내의 마음을 불편
하게 했던 일이 갑자기 부끄럽게 느껴진다 .
그렇게 궁 시렁 거릴 때 마다 아내는 당신이 하도 험하게 신은 것은 생각 안하고 안 빠진 때만
탓 하냐고 뾰루퉁스럽게 대꾸를 하곤 했었다.

요즘은 품질 좋고 값비싼 운동화들이 산더미처럼 넘쳐 나지만 예전에는 운동화라고 해야
시커먼 면 운동화 하나 뿐이였다.
그 당시 그 운동화 한 켤레가 6 백 원정도 이였으니. 지금으로 생각하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 6 백 원짜리 운동와도 그 당시에는 얼마나 귀하고 값비싸던지.
아마 지금에 와서 생각 해 보니 그 운동화 하나 때문에 몸이 성치 못한 어머니와 한 3 년 여를
싸웠던 것 같다.

결국은 중학교 2 학년 때 영어선생님이 사주 셔서 신어 봤지만 말이다.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신발가계에 갔을 때 발등에 검정고무신의 시커먼 땟 자국이
얼마나 진하게 찌들었던지 챙피해서 벗지를 못하고 있을 때 영어 선생님께서 고무신을
벗겨 주시고 그토록 신어보고 싶었던 검은 면 운동화를 순수 신겨 주셨을 때의 기분이란
그 무엇으로 바꿀 수 있을까.

어느덧 아내없는 하루 아내의 모습이 되어 보겠다고 분주하게 보낸 시간이 저물어 가고있다.
마지막으로 가스랜지위에 양은냄비에 쌀을 씻어 밥물을 얹어 놓고 아내를 기다린다.
오도 방정 소리를 내며 기다리는 가슴속의 꿈틀 거리는 그것이 더 아내를 기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게 힐끔힐끔 시계를 바라본지 두 손가락 안에 들 무렵에 아내에게서 전화가 온다.

지금 비오는데 우산이 없다고 .우산 들고 나오라고 . 그 말에 알았다고 수화기를 내려 놓을
찰 라에 수화기 저 편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
아이가 올 시간 이라고 .그 말에 괜한 투정을 부려 본다.
그럼 어떻게 하라고. 그 말에 아내는 낄낄 웃으며 우리 서방님 오늘 같이 안 놀아 줬다고 삐지셨나. 또다시 낄낄 웃으며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만나자고 먼저 수회기를 내려 놓는다.

서둘러 우산을 들고 아이 마중을 나갔다.
이미 집 앞에 아이를 태운 노란 버스가 먼저 와서 두 눈 을 깜빡거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가 아빠하며 품으로 안겨 온다.
그리고 아이는 엄마 집에 있어.엄마를 부른다.
요 녀석 아빠보다 엄마가 더 좋은가 보구나. 하며 살짝 볼을 깨물자 아이는 씨 이익 웃으며
입술을 덥쳐 댄다.

비오는 우산 속에 아이와 아내를 기다리는 시간이 그 날처럼 행복하다고 느껴 본적은
없을 것이다.
잠시 후 버스가 쏜살같이 달려오더니 빗 길에 미끄러지는 소리와 함께 나와 아이의 앞에
멈추어 선다.
그리고 아내가 빙긋이 웃으며 내린다.
그렇게 아이와 아내와 손을 잡고 집에 들어서니 타는 냄새가 먼저 우리 세 사람을 반긴다.
까스랜지위에 올려진 노란 양은냄비에 밤이 타고 있었다.

자기 때문에 깜박했잖아 .이런 완전히 밤이 아니라 깜밥됬네. 어쩌지 아내의 눈치를 보고있는 나에게 아내는 오늘 우리 맛있는 거 시켜 먹을까.하는 그 말에 아내의 모습이 되어
보겠다고 하루종일 부지런히 꿈틀 거니느라 고단한 몸 위로 따스한 숭슘같은 행복이
사르르 젖어 든다.
그리고 오늘따라 아내의 미소가 고운 햇살처럼 저물어 가는 어둠 위를 곱게 물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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