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런 인생, 저런 인생 많은 세상일들 소설로 남겨주세요
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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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 만큼이나 끈적한 전철 속에서 종철은 3천원 짜리 전자 시계의 희끄무레한 숫자를 세고 있다. 차창밖은 늦은 해거름이 여름을 빗질하고 몽롱한 머리로 올라가지 못한 핏덩어리들이 발바닥에서 이글거리고 있는 듯 절절거린다. 축 처진 몸뚱이는 말라빠진 북어 새끼처럼 욕심스럽게 두손으로 잡은 전철의 원형 손잡이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다.

예전 같으며 요즘 같은 봄 가뭄에 강바닥이 거의 드러나 보일 땐데 하던 간에 공사는 잘해놓은 것 같다. 밑도 끝도 없이 흘러가는 강물에 아침신문 어느 한구석에 난 서울 근교 고지대의 극심한 물 사장이 떠오른다.
하루에 물 몇 바가지로 겨우 목을 축일뿐 여타 생활에 필요한 일을 할 수가 없어 다른 지역으로 가 음식과 세탁을 해야 한다는 어느 아주머니의 하소연이 강물 위를 희롱하는 햇살 속에 어른거린다.

삶에 대한 진실한 가치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어린 자식의 점심 도시락을 훔쳐야 하는가....., 머뭇거리다, 아비를 한번 힐긋 쳐다보고 돌아서는 아들녀석이 진종일 눈에 밟혀 쓸데없이 화장실을 들락거렸던 자신이 한심스럽기보다 저주스러웠다.
무엇 때문에 난 여기 이렇게 태어나 마루타 같은 삶을 살아야 했으며 또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보릿가시에 울어야 했고 강냉이 밀가루 죽에 회충과 싸워야 했던 생각히 싫은 과거들이 사막 같은 머리 속을 모래 바람처럼 휘몰아 감는다.

불이 난다. 발바닥에서, 돌처럼 굳어버린 머리를 흔들어 부질없는 생각들을 지워버리자 그리고 앞을 똑똑 이보자 죽지 않고 살아있는 순간까지.
허나, 무릎 바로 앞에는 짝잃은 오뉴월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 모습을 한 노파가 웅크리고 앉자있다. 빗질 없는 파뿌리 머리카락은 이미 세탁을 포기한 저고리 위에 흐트러저 있다.
비스듬히 차창에 기된 작은 머리는 가늘게 떨고있는 듯 빛 없는 눈은 이제 나와 함께 떠나야 할 때가 됨을 알리는 듯한 강물의 손짓에 넋을 놓고 있다.




어찌 견디었던 과거를 회상하시는지 휑한 눈동자는 이슬을 머금고있는 듯 습기에 젖어있다.
꽃잎을 잃은 지 오래고 이제 잎도 줄기도 이 가뭄만큼이나 말라 버린 저 모습이 내가 가야할 나의 생애라면 차라리 이렇게 나를 직시할 수 있는 순간에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낳지 안을까.

이제 불욕의 나이를 지나 천리를 따라야할 나이건만 아직도 그 끈끈한 미련의 사슬에 매여
굴속같이 끝을 분간할 수 없는 삶을 헤매야 하는 자신의 초라한 삶이, 존재 함 만큼이나 싫다.

산다는 것과 죽는 다는 것 이런 숙명 같은 숙제를 놓고 과연 우리네는 얼마나 자유로우며 또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온갖 것들이 하잘것없는 것들로만 보인다.
그 소용돌이치던 데모 군중 과 최루탄 가스 속에서 쫓고 쫓기는 너와 나는 과연 무엇이었단 말인가.



한강교를 지난 전철은 노량진 역에서 몇몇 사람을 뱉어 놓고 또 그만큼을 삼킨 뒤 출발한다. 어느 쪽에선가 지나간 유행가 소리가 들리더니 휠체어에 의족을 드러낸 사람과 그를 미는 목발을 한 사람이 들어선다. 그들은 지폐 몇 장과 동전이 든 깡통을 사람과 사람 사이를 뚫고 내민다. 종철은 그들이 그의 근처쯤 왔을 때 뻔히 아는 주머니 사정을 괜스레 여기저기 뒤적인 끝에 500원 짜리 동전 한 닢을 그 속에 떨어뜨린다. 뗑그렁 소리에 후회 같은 지난 일요일이 생각난다. 라면을 사겠다고 500원을 달라던 아들여석에게 끝내 주지 못한 한스러움이 머리끝을 지여 박는다.

전철은 몇 번을 멈추었다가 출발하는 사이에 승객들은 많아져 서있기도 힘겹다.
이마에 맺혔던 땀방울이 눈을 따갑게 한다. 아까 와는 반대 인 듯한 곳에서 찬송가 소리함께 맹인이 나타났다. 사실 그는 소리의 방향을 분별하지 못한다. 유년시절 극심한 발열로 한쪽 청각 신경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저 이리저리 머리를 돌려 소리의 방향을 찾을 뿐이다. 그가 이리저리 헤집다 그에게 가까이 왔을 때 습관처럼 빈 주머니 속에 손을 넣고 그가 지나갈 때까지 뒤적이는 자신이 스스로도 한심스럽다.

찝지므르한 땀이 입술을 지나 들쭉날쭉한 턱수염에 고이다.. 광택 없는 구두 코끝에 떨어진다. 앞에 얹었던 노파가 움직거리더니 무릎을 집고 일어나려 한다.
그가 그녀를 위해 조금자리를 빗겨 스려 하자 어디선가 나타났는지 40초반쯤 보이는 친구가 잽싸게 노파의 뒤를 점령하더니 팔짱을 끼고 이내 눈을 감아버린다.
그도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고 싶다. 애 우는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온다. 숨이 막힌다.
창문을 열고 뛰쳐 나가고싶다. 이런 와중에 또 한 소리가 찜통 속을 휘젓는다.
``하나님을 믿으나 그러면 네 집과 가족이 평안을 얻으리라`` 차창이 짜랑 짜랑 울리도록 종교인이 외쳐된다.





차라리 다음 역에서 내여야겠다. 더는 내 이 얄팍한 인내로는 견딜 수가 없다.
전차 문이 열리자 그는 달구어진 팝콘처럼 퉁겨 나왔다.
허나 이게 어찌된 일인가 늘 들려 있어야할 가방이 없다. 뒤돌아 다시 열차에 오르려 하니 이내 문이 닫치고 그는 비틀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으려는 자신을 간신히 추스려
승강장 플라스틱 의자에 주저앉았다. 이를 어찌할고 오늘따라 지갑을 가방 안에 넣어 두지 않았던가 당장 내일 출근이 문제다. 출입증이 가방 안에 있으니,
그는 뛰기 시작했다. 역무실에 들려 자초지정을 알리고 다음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가 떨쳐 버린 열차의 종점은 인천 역이라는 것을 알게된 종철은 각 역마다 역무실을 들려 사방이 어둠으로 덮인 뒤야 인천 역에 들릴 수가 있었다.
허나 기대했던 가방은 그를 기다려 주지를 않았다. 어지럽다. 아니 현기증이 엄습해 온다 뭘 어찌 해야 한단 말인가, 눈앞에 안개가 자욱하다. 모든 감각 기관이 정지해 버린
듯 어안이 벙벙하다. 주저앉아 바릴 것만 같은 자신을 승강장을 밝히는 전주에 기대고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본다. 눈이 시럽다.

``청량리행 마지막 열차가 곧 출발하오니 승객여러분은 속히 승차 해 주시가 바랍니다.``
어두은 공간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멍했던 그를 다시금 황당한 자신의 현실로 돌아오게 한다. 전철에 몸을 실은 종철은 무너지듯 의자에 주저앉고 눈을 감아 버렸다.






비들기 속털 같은 진눈깨비가 날린다. 모두들 움츠린 어깨춤으로 늦은 저녁을 재촉하는 어름한 하수부두 바다바람에 흔들리는 포장 마차에 매달린 14살의 소년은 호떡 굽는 뚜껑을 끌어안고 있다, 리아가 바퀴 위에 올라탄 헐렁한 까만 고무신은 그 주인과는 상관없이 떨고 있다.
생선 다라를 인 아주머니가 그의 눈앞에 50환 지폐를 내밀고 호떡 5개를 달랜다. 그것을 봉지에 넣어주고 거스름돈을 돈통에서 찾아 건네주려 하니 아주머니는 이미 떠나고 없다. 소년은 거스름돈 25환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다행이 아주머니는 저만치 가고있었다. 그는 뛰어가 ``아주머니 여기 돈이요``하고 소리치자, 그녀는 휙 돌아서며 ``뭐 돈주지 않았니`` 짜증스런 목소리로 그를 노려본다 ``아닙니다. 여기 거스름돈을`` 하고 소년은 그녀에게 돈을 건네주고 인사를 꾸벅하고 돌아서 포장마차로 뛴다. 자꾸만 눈에 눈이 부디 친다. ``종철아``, 어머니께서 부른다. 향긋한 병원 냄새가 좋다.
``아버지는 어떠세요`` ``응 수술은 무사히 끝냈다. 한, 한 달은 입원 하셔야한다더라.
왠놈에 눈이 이리 들치는거야, 어머니는 늘 그러듯 어두운 밤하늘에 너풀대는 눈을 보시는지 포장 밖으로 머리를 들이민 체 움직이시지를 않는다.
병약하시던 아버지는 위출혈로 어제 급히 입원 하셨던 것이다.
고만고만한 동생들 넷과 그는 모두가 엄마의 짐이겠지 어둠 보다 더 짙은 침묵에
소년은 숨이 막힐듯하다.




``구로역, 구로역에서 내리실 분은 오른쪽 출입문을 이용하십시오. 다음 역은
신도림역 입니다.``

내려야지 그리고 또 찾아 봐야지 종철은 구로역 분실물센터에 가려는 것이다.
계단을 오르는 그의 발이 자꾸만 무언가에 끌리듯 무겁다.
안내판을 따라 분실물세타를 찾았으나 이미 문은 닫쳐있었다.
이제는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돌아갈 수도 없다 전철은 끝났고 갖은 것은 전철 정기권
밖에 없으니.
그는 밖으로 나와 걷다가. 그가 정신을 차린 곳은 어느 다리 난간에 기대선 그를 전경이 자신의 양팔을 붙들고 있는 강건한 손의 힘을 느낄 때였다.
``아저씨, 여기서 뭐 하는 겁니까? 파출소까지 가시지요,,
그는 무슨 변명을 하려 하다. 그냥 끌려 갈 수밖에 없는 자신을 그들에 맡기고 말았다.
파출소에서 그는 몇몇 질문에 답하고 저쪽에 가 앉아있으라는 지시대로 파출소 한쪽 구석자리에 쭈그리고 앉자 엄습해오는 조름과 피곤에 얼마를 졸았나보다,
``여보 준이 아빠 `` 아렴풋이 들리는 낯익은 목소리에 눈을 뜬 그는 멋쩍은 듯 피시시 웃는다.
그는 아내의 손에 끌려 파출소를 나와 봉고차에 올라 탔다. 운전석에는 처남이 반쯤 감긴 눈으로 그를 쳐다보더니 차를 급발진 시키는 바람에 그의 머리가 차 앞 유리에 부딪쳤다.
눈앞이 번쩍, 정신이 돌아온 듯 머리를 한번 매만지고는 눈길을 차창 밖으로 돌려버린다.
밤바람이 차갑다. 여름밤인 대도, 그리고 모두가 말이 없다.

"이글은 십여년 전에 극적거란 글입니다.
헌데 왜 오십이 넘은 나이에 철부라기 짖을
하는지 차라리 내가 내가 싫소.
보신분들 용서 하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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